동네 어귀에, 어렸을 때의 까마득한 기억에서 부터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왔던 허름한 사진관이 하나 있다.
이 사진관은 그야말로 ‘동네사진관’의 전형적인 허름한 모양을 하고 있다.(최근에는 ‘사진관’간판을 떼고 ‘스튜디오’로 이름을 새로 달긴 했지만)

 이 사진관의 증명사진 가격은 현재 9000원. (어렸을 때의 기억에서 더듬어 보면 4000원>6000원>8000원 에서 현재의 가격까지 온 것 같다)
 가격이 계속 인상되어 왔지만 그 당시마다의 가격을 생각 해 보면 동네 사진관 치고 싼 가격이 아니었다. (증명사진 5매에 원판을 주지 않는다)

 99년 말 즈음, 이 사진관 바로 옆에 디지털 붐을 타고 디지털 사진관이 하나 생겼다. 얼핏 기억나기에 당시 1000만원 선의 35mm 디지털카메라 한 대와 단렌즈 하나, 염료승화용 대형 포토프린터 정도를 구비했던 것 같다. (지금도 비싸지만 당시 디지털인화기가 골목 사진가게에 들어오기는 무리였던듯 싶다)

 이 새 사진가게(가게..)가 내세운 홍보전략을 잠시 보면,
- 3000원에 증명사진 35장, 뽀샤시하게 만들어 줌-_-

 당시 원래 있던 사진관이 6000원에 5장 이었으니 분명 파격이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1년쯤 버티다가 망해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 있었던 사진관의 사진품질이 훨씬 좋았으니까.

 나는 이 사진관의 단골손님이다.


1998년 여름, 주민등록증 / / 2000년 말, 대학교 학생증 / 2002년 여름, 이력서

 사진과 사진장비에 대해서 알게 된 최근에 느낀 것 이지만, 이 사진관의 주인아저씨는 분명 프로페셔널이다. 일단 허름한 사진관 외관에 비해 탄탄한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증명사진 하나를 찍더라도 중형카메라(장비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름만 말하면 알만한)를 사용하고 스트로보나 하다못해 엄브렐라 반사판만 보더라도 장비에 돈을 아끼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돈으로 발랐네’하는 느낌과는 분명히 다르다) 다른 사진관들이 수지 맞추기 위해 35필름(요새는 그마저도 디지털카메라)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상당히 외곬으로 가는 느낌.

 사진촬영의 임함에 있어서도 빈 틈이 없다. 의자에 앉는 각도, 내가 매번 증명사진을 찍을 때 마다, 시선의 위치, 머리스타일, 칼라가 있는 옷의 정돈상태, 표정까지 어떤 것 하나도 그냥 넘어 간 적이 없다. 나름대로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냥 대충 찍고 넘어가는 법이 없는 주인아저씨이다. (대신 찍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_-)

 관련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사진관은 원판필름을 주지 않는다. 혹여 낯이 선 손님이 찾아오면 원판필름을 주지 않는다는 설명을 미리 듣게된다. ‘제가 찍는 사진들은 모두 제가 작품으로 임해서 찍는 것입니다’

 가끔 주변에서 증명사진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들어오곤 한다. 그러면 간단히 찍어서 모종의 편집을 거친 후에 인터넷 인화로 맡겨서 헐값에 찍어 내 주곤 한다. 대체로 만족들 하지만, 내 사진은 그런식으로 찍거나 부탁하지 않게된다-_-; 사진(특히 증명사진)이 주는 첫 인상은 그렇게 허술하게 만들기엔 너무 큰 영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길어도 2년에 한 번 씩은 증명사진이 필요해서 찍어왔는데, 다시 2년째 되는 올해는 증명사진 만들 일이 딱히 없어보인다. 그래서 올해는 프로필 사진을 한 장 만들어 볼까 한다. 기록의 의미로서 그냥 쉽게 찍는 스냅 사진들과는 분명히 다르니까.

 어쨌거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에게 무언가를 맡긴다는 것은 역시나 기분 좋은 일. 가까운 곳에 계속 접하는 일의 전문가가 있다는 점 또한 기분 좋은 일 이다.